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슨 웰스 (문단 편집) == 작품 ==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던 웰스이지만 흥행하고는 인연이 멀었다. 그럼에도 B급 영화에까지 출연해가면서 어떻게든 제작비를 모으고 영화를 만드는 등 영화에 대한 열정은 그의 평생을 지배했다. 그의 최고 걸작은 역시 〈[[시민 케인]]〉으로 당시로서는 할리우드에서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딥 포커스[* 카메라와 피사체, 즉 찍는 대상의 거리에 관계없이 멀고 가까운 광경을 모두 선명하게 찍는 방식이다. 주로 영화에선 [[롱테이크]] 촬영에서 쓰이며 기존의 영화가 감독이 의도한 대로 관객의 시선을 이끌던 것과는 다르게 관객 자신이 스스로 자신이 이끌리는 대로 시선을 옮기게 되는 특징이 있다.][* 최초로 딥 포커스를 사용한 영화는 아니다. 촬영감독 그레그 톨런드가 1년 전 [[존 포드]]의 〈머나먼 항해〉에서 딥 포커스를 사용했다.], 로키 조명, 역광 조명, 참신한 구도, 극단적 클로즈업 등 영상면에서 대단히 파격적이고 이채로운 방식들을 구사해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웰스가 〈시민 케인〉에서 구사한 이런 파격적인 시도들은 오늘날에 와서는 일반적인 영화의 제작기법으로 통용되고 있다. 연극 배우를 했었던 탓에 다른 영화에 배우로도 출연하기도 했었고, 자신이 맡은 배역의 대사를 직접 쓰기도 했다. 자신이 직접 출연하기도 했던 〈[[제3의 사나이]]〉에서 맡은 해리 림의 대사들을 직접 쓰기도 했는데[* 이는 웰스의 구라라는 이야기도 있다. 다만, 뻐꾸기 시계 대사만은 웰스가 만들었다고 인정하는 분위기.], '''"이탈리아는 30년간 [[보르자]] 가문의 압제를 겪었지. 그들은 전쟁, 테러, 살인, 피바람을 겪었지만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르네상스]]를 만들어냈어. 스위스는 형제애가 있었지. [[민주주의]]와 [[평화]]를 누리며 500년을 보냈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게 뭐가 있나? 뻐꾸기 시계뿐이지."'''[* 실제 역사에서 스위스는 많은 전쟁, 특히 [[내전]]을 겪었으므로 이는 사실이 아니다.]란 대사는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명대사]]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문장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타나토노트]]》에서 인용된다. 또한 [[찰리 채플린]]의 〈[[살인광시대]]〉에서 나온 유명한 대사인 '''"한 사람을 죽이면 범죄자이지만, 전쟁에서 100만 명을 죽이면 정복자가 된다. 다수가 살인을 신성시한다."'''라는 것도 웰스가 쓴 것이라는 설이 있다. (장 로스탕- 프랑스 생물학자, 철학자) 물론 채플린은 자서전에서 "웰스는 푸른 수염 백작을 영화화하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냈을 뿐, 각본은 온전히 내가 다 쓴 거다."라고 반박하고 있지만, 묘하게 살인광 시대의 엔딩 크레딧에는 오슨 웰스의 이름이 'based on an idea by' 명목으로 올라와 있다. "화성인의 침공"에서 보여줬듯이 상당히 장난기 있는 성격이기도 했기 때문에, B급 영화에 출연해 영화 제작비를 모아야 하는 비참한 인생임에도 본인 스스로는 이것을 즐긴 듯하다. 1967년에 나온 정신나간 영화 〈007 [[카지노 로얄(1967)|카지노 로얄]]〉에도 출연했을 정도. 1986년에 개봉한 [[해즈브로]]의 애니메이션 영화 〈[[트랜스포머 더 무비]]〉에서는 [[유니크론]]의 목소리를 맡았고, 유작으로 TV 시리즈 문라이팅([[블루문 특급]])의 한 에피에서 내레이션을 맡은 것이다. 참고로 웰스는 [[유니크론]]을 더빙한 후 5일 후 사망하여 유니크론은 그의 유작이 되었다. 이 때 웰스가 더빙한 유니크론의 대사들을 보면 굉장히 힘겹게 녹음했다는 느낌을 대번에 느낄 수 있다. 특히 마지막에 유니크론이 죽으면서 내뱉는 유언은 삑사리가 심해서 그의 건강 상태가 매우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 [[오컬트]]와 [[마술]]에 빠진 할머니를 경멸했으면서도 마술 솜씨가 상당히 좋아서 직접 마술을 하기도 했다. 1974년의 〈F for Fake〉는 웰스의 마지막 감독 작품으로 웰스 자신이 직접 늙은 마술사를 연기하는 열의를 보였다.[* 비단 이 영화 뿐만 아니라 A Safe Place에서도 마술사로 출연했다.] 〈제3의 사나이〉 촬영 당시에, 웰스가 호텔방에 틀어박혀 꼼짝달싹을 안 하자 감독이 웰스에게 '''"유명한 마술사가 공연한다는데 안 갈 거야?"'''라고 낚아서 나가게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때문에 후기로 갈수록 [[마술]]의 영향력이 강해져 서사가 급진적으로 변해가는 경향이 있다. [[메타픽션]]적 요소라던가 배배꼬인 서브플롯의 활용, 자기반영적인 전개가 대표적이다. 상술한 거짓의 F도 그렇고 아카딘 씨, 마지막 영화인 불멸의 이야기 역시 [[시민 케인]]이나 상하이에서 온 여인에서 만든 미스터리 플롯을 유용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자아내 [[누벨바그]] 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바 있다. [[팀 버튼]] 감독의 〈[[에드 우드(영화)|에드 우드]]〉에서도 오슨 웰스의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에드 우드가 영화 제작비를 구하지 못해 영화 제작을 포기할까 하며 바에 갔는데 거기서 〈멕베스〉의 제작비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웰스가 등장한다. 영화사상 최고의 걸작을 만든 웰스와 최악의 감독으로 유명한 우드를 만나게 한 것(실제로 만난 적은 없다고 한다). 우드는 '''"웰스 같은 사람도 제작비 때문에 골치구나!"'''라면서 용기를 얻어 다시 영화 제작에 매진하기로 결심한다. 워낙 힘들게 영화를 만들어서 그런지, 한 영화에도 판본이 많기로 악명 높다. [[화면비율]]과 편집, 러닝타임부터 웰즈 사후 재편집까지 겹쳐져 한 영화에도 판본이 세 개나 있는 경우도 있다. 가장 심한 예로는 '악의 손길'과 '오델로', '아카딘 씨'가 있다.[* 악의 손길은 화면비율까지 포함하면 판본이 여섯개나 되고 (편집본은 세 개), 오델로는 판본이 세 개다. 정점은 아카딘 씨인데 편집본만 해도 2006년 재편집 판본까지 포함해 다섯 개나 된다.] 심지어 복원판도 여러 개 있는지라 웰즈 영화를 볼때는 판본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보는 걸 추천한다. 사후 오슨 웰스 재단이 설립되고 판권이 정부었던 오야 코다르와 마지막 처에서 얻은 딸 베아트리스 웰스에게 나눠졌는데, 베아트리스랑 오야 사이가 좋지 않아서[* 오슨은 베아트리스의 어머니인 파올라 모리랑 결혼생활을 죽을 때까지 유지하면서 오야 코다르랑 바람을 피웠다. 좋을리가 만무한 상황. 실제로 <[[바람의 저편]]> 소송 당시 둘 사이에 험악한 말들이 오갔던 걸로도 유명하다. 다만 2010년대부터는 어찌되었든 서로 청산된 듯 하다.] 트러블이 많았다. 특히 베아트릭스는 권리를 주장하다가 지나치게 갑질을 부리는 경우가 많아 상당히 까였던 편이다. 특히 미완성작인 [[바람의 저편]] 완성 시도를 방해했던 거나, 본인이 손 댄 1992년 오셀로 복원판[* 음향 싱크를 재조정하고 음향 효과를 새로 입히고 음악도 완전히 다시 녹음했는데, 품질에 문제가 많은데다 이전 판본 공개를 막아버려서 씨네필들과 비평가들에게 먼지나게 까였다.], '오셀로 만들기' 공개 방해 건[* 제작 다큐멘터리 특성상 본편 '오셀로' 발췌 장면이 많은데, '오셀로 만들기' 판권은 오야에게 있고 '오셀로' 본편 판권은 베아트리스에게 있었다. 때문에 오야와 베아트리스의 동의가 있어야 공개가 가능했는데 오야를 싫어했던 베아트리스의 딴죽에 2017년까지 거의 [[환상의 에피소드]] 취급을 받았다.]은 많이 까였던 사건이다. 물론 베아트리스는 기본적으로 아버지 작품의 소개와 재평가에 열성적인 사람인데다 터너엔터테인먼트와 RKO픽처스를 상대로 그동안 지급하지 않은 시민 케인과 위대한 앰버슨가의 흥행수입 배당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하는 정당한 권리 행사도 했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이전의 행보를 반성하고 전향적으로 변했는지 아버지 유품을 주립 도서관에 기증하고, 그토록 반대했던 <[[바람의 저편]]> 공개에 동의한다던가[* 본인이 프로듀서로 참여해 무려 48년만에 2018년 [[넷플릭스]]에서 공개했다.] 2017년 [[크라이테리온 콜렉션]]의 '오셀로' 구판과 '오셀로 만들기' 공개 허가 요청도 허락해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베아트리스 본인이 어린 시절 아역으로 아버지 후기작에 참여한 경험이 있고, 아버지의 고생담을 직접 지켜봤기에 권리 행사에 적극적이고 까칠하게 구는 경향이 있는듯. 실제로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미완성작이자 37년 만에 공개된 돈 키호테가 편집실에서 처참하게 잘려나가는 걸 보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